있으면 귀찮은데, 없으면 아쉽다
있으면 귀찮은데, 없으면 아쉽다
비가 올지 몰라 온 종일 우산을 가지고 다니는 것처럼, 아내는 내가 집에 있으면 걸리적 거리고 귀찮은데, 막상 내가 출장 때문에 몇일 집을 비우면 내가 곁에 없는게 아쉽다고 한다. 그런데 아내가 내가 없으면 아쉬워하는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둘이 해야 쉬운 집안 일을 혼자서 힘들게 할 때나, 퇴근하고 집에 와서 혼자 저녁을 챙겨 먹을때 내가 옆에 없는게 아쉽다고 한다.
오늘도 일주일 만에 해외 출장에서 돌아 오니까, 아내는 기다렸다는 듯 그동안 밀린 침대보 세탁을 했다. 혼자서는 말린 침대보를 당겨가면서 접기가 어려우니까, 아내는 내가 집에 있을 때만 침대보 세탁을 한다. 건조기에서 꺼낸 침대보는 당겨 접지 않으면 주름이 생긴다. 주름이 좀 있더라도 메트리스에 씌우고 드러 누으면 주름은 펴질텐데도 아내는 늘 침대보의 주름을 당겨서 편후 군인이 모포 접듯이 각이 있게 접어서 서랍장에 넣어 둔다. 나와 침대보를 접을때 미간까지 찌푸리며 침대보를 당기는 아내를 보면 예전에 엄마가 물을 한 모금 입에 머금은채 이불 호청을 당기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엄마는 가끔 나에게 맞은 편에서 이불 호청을 잡게 하시고는 입으로 분무기처럼 물을 뿜어가시면서 이불호청을 피셨다. 엄마와 아내가 왜 그렇게까지 이불호청. 침대보의 주름을 피려고 노력하는지 잘 모르겠다. 다만 내가 해야하는 것은 맞은 편에서 시키는대로 이불호청, 침대보를 놓치지 않게 꼭 잡고 있어 주기만 하면 될 뿐이다.
몇년 전, 일본 사람들이 황혼 이혼을 많이 한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남편이 퇴직하면 아내가 이혼 요구를 하고 남편의 퇴직금 반을 챙긴다는 것이다. 퇴직금 때문에 이혼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퇴직한 남편과 24시간을 같이 있다 보니까 싸워서 이혼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떤 이유건 간에 씁쓸한 기사였다. 다행인지 우리 부부는 아직까지 이런 경우에 해당되지는 않는것 같다. 아내는 커리어우먼으로 소위 잘나가니까 경제적인 이유만으로 나랑 같이 사는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내가 늦게 퇴근하거나 주말에 따로 스케줄을 잡으면 싫어하는 표정이 역력 한 것을 보면 아내는 나와 같이 있는 것이 그렇게까지 몸서리 치게 귀찮치는 않은 것 같다. 나로선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다.
아내와는 캠퍼스 커플로 만나 떨어지면 못살것 같아 일찍 결혼을 했다. 그러나 막상 같이 살아 보니까, 결혼 초기에는 성격적으로 서로 부딪치는 일도 많았고 부부 싸움도 지긋지긋하게 많이 했다. 부모가 될 준비가 덜된 상태에서 아이들을 낳고 키우느라 경제적으로는 많이 쪼들렸고, 총각때 처럼 자유로운 삶을 살지 못하니까 같이 사는게 늘 행복하지 만은 않았다. 모든게 귀찮을 때도 있었고,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위태 위태'한 적도 여러번 있었다. 그럴 때마다 둘 중의 한 사람은 침대보를 놓지 않았고 상대방이 다시 잡을 때까지 기다려 줘서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 아내는 '그때는 아이들이 어려서 헤어지지 못했다', '예수의 힘으로 나를 용서할수 있었다' 하면서 결국 자기 칭찬으로 결론을 내곤 한다. 그럴때마다 아내에게 핀잔을 주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내의 '의리'가 고맙고 대견하기까지 하다. 탈랜트 김보성이 '의리 의리!' 하며 외치는데, 부부끼리도 이혼하지 않고 끝까지 사는 것도 진정한 '의리'의 실천이 아닌가 싶다.
미국보다 먼저 코로나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렸던 한국으로 출장을 갔다 오니까, 직원들은 내가 당분간 사무실에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눈치였다. 매주 놀자고 불러냈던 친구들도 요즘은 연락이 뜸해졌다. Social Distancing이라는 신조어도 생기고, 사람들은 의식적으로 타인에게 다가가는 것을 꺼린다. 표면적으로는 남에게 피해를 줄까봐 그렇게 한다고 하는데, 사실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행동일 것이다. 나 자신도 그렇고 우리는 인간이기에 이런 이기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심지어 친구들이나 사랑하는 이성, 가족들 앞에서도 나의 이기심이 앞서고, 그들이 옆에 있슴을 축복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산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다 보니까, 아내가 나의 부재를 아쉬워 한다는게 갑자기 고맙게 느껴졌다. 어쩌면 아내의 '내가 없어 아쉬웠다' 라고 하는 말은 '내가 없는 동안 내가 그리웠다'라는 표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불현듯, 훗날 나의 맞은 편에서 늙고 힘이 없어 침대보를 낑낑거리며 당기고 있는 아내의 모습이 상상되서 웃음이 절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