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침묵과 사도 바울의 항변
예수님의 침묵과 사도 바울의 항변
사도 바울은 성경에 나오는 사도들중에 내가 제일 존경하는 인물이다. 바울사도가 쓴 성경들은 기독교적 세계관을 가지지 않은 내가 보더라도, '사도바울의 믿음을 나도 갖고 싶다'고 생각될 정도로 제 3자의 시선으로 객관적이지만 논리적으로, 철학적이지만 정열적으로 예수님을 설명하고 있다. 그가 쓴 성경들은 복음서 전에 써서 그런지 예수님이 행했던 기적들에 포커스가 맞춰지지 않고, 오직 예수라는 어떻게 보면 '유대교의 반란자(rebel)' 를 유대교에서 구약때부터 기다려왔던 메시아로 결론지었다. 그리고 그는 흔들림없는 메시아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논리적이지만 사랑이 넘치는 편지로 각지에 흩어져있는 초기 '예수교'인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면서 복음의 진정한 의미를 일깨웠다. 혹자는 '예수님이 없었으면 사도바울도 없었겠지만, 사도바울이 없었으면 오늘날 기독교도 없다'고 역설적으로 표현하는데 일리가 있는 말 같다.
사실 내가 인간 사도바울에게 끌린 첫번째 이유는 그의 '변호사적 재능' 때문이었다. 자신을 합법적으로 죽이려고 법정으로 끌고간 유대인들에게 맞서 사도바울은 그들 주장의 모순들을 조목조목 짚어가며 논리적으로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려 했다. 그리고 필요하면 시간을 끌면서 마치 경험 많은 변호사가 의뢰인을 변호하듯 사도 바울은 자신을 변호하는데 있어 전략적이었고 적극적이었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서 그렇게 담담히 자신을 변론할수 있는 사도바울을 상상하면 온몸에 전율이 느껴진다. 그런 반면에 예수님은 대제사장앞에 끌려 나왔을때 자신에게 씌여진 소소한 죄목에는 '침묵'으로 일관하다가, 정작 본인이 '메시아냐?'는 질문에는 죽을 줄을 뻔히 알면서도 '그렇다'라고 대답하며 죽음을 택했다. 어느 목사님은 이부분을 설교하시면서, 그동안의 예수님의 행적을 볼때 그 정도 변론하시는 것은 일도 아니었을텐데 예수님은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처럼 당신의 운명을 아셨기에 침묵하셨다고 설명을 하셨다. 그리고는 예수님처럼 성도들의 묵상과 침묵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강조 하셨다. 만약에 예수님이 그 상황에서 변론을 하셨으면 어땠을까 하는 짖굿은 상상을 해본다. 물론 허를 찌르는 답변을 하셔서 성경에 기록될수도 있었겠지만, 아무래도 이 상황에서는 질문에 대한 답변보다는 침묵이 더 멋있게 느껴진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예로보터 '침묵'은 높은 도덕적 기준으로 여겨졌다. 말을 많이 하는 것보다 상대방의 말을 많이 들어주는게 대화술의 기본이고 상담자의 역활이다. 그러나 직업상 말로 먹고 사는 일을 하는 나는, '말을 많이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어느 정도 사로잡혀 사는것 같다. 적절히 어려운 말도 섞어서 침 튀기며 얘기해야 능력을 인정 받을수 있을것 같고, 말을 아끼면 돈 안주면 말 안하는 사람으로 오해를 받을것 같다는 착각도 하곤한다. 직업을 떠나 일상 생활에서도 나는 침묵보다는 타인에게 도움이 안되는 상처되는 말을 너무 많이 한다. 단순한 재미를 위해서 상대방의 약점을 안주거리로 얘기 한다던지, 나의 의견을 묻지도 않았는데도 의견 제시를 하고 그 수준을 넘에 자기 주장까지 펼친다던지, 위로가 필요한 상황에서 분석을 하고 주제넘게 해답을 제시한다던지... 어떤 때는 내 스스로가 그런 점들을 인지 하면서도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에게 말로써 상처를 주는 어리석음을 반복해서 저지르곤 한다.
나의 아버지는 예전에 내가 젊은 혈기에 도가 넘치는 넘는 말을 하기라도 하면, "막내야, 말은 땅으로 떨어지는게 아니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한번 뱉은 말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서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니 조심해야 된다' 하시며 말의 신중함을 강조하셨다.그렇다. 내 입을 떠난 날선 말은 내가 후회를 한다해도 아버지 말씀대로 땅에 떨어지지 않고 어떤이에게 가슴속 깊은 상처가 되고, 설령 사과를 한다 해도 절대 없었던 말이 될수는 없다. 이제는 젊다고 쉽게 용서 받을수 있는 나이도 아니기에, 말을 하려면 사도바울처럼. 그렇지 않은 상황이면 예수님처럼 '침묵'하는 지혜를 배워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