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까꿍놀이
아버지와 까꿍놀이
예전에 아이들를 키울때 애가 울면 수건이나 주위 사물들을 이용해서 '까꿍' 놀이를 해서 울음을 그치게 했다. 수건으로 얼굴을 가렸다가 '까꿍'하고 얼굴을 내밀면 아이는 놀래서 잠시 자기가 울고 있다는 사실을 잊는다. 울음을 그치고 나서도 계속 '까꿍'을 하면 아이는 나의 재롱에 감동 받아서인지 이내 '까르르'하고 웃음을 터트리곤 했다.
아버지의 87번째 생일을 맞아 2개월 만에 양로원에 계시는 아버지를 찾아 뵜는데, 지하실 계단을 내려가듯 아버지의 치매 상태는 지난번에 비해서 몇 계단 더 내려 가신 상태였다. 7 개월 정도 된 아기처럼 아버지는 침대에 누워 혼자서는 몸을 추스리지도 못하셨다. 지난번에 뵈었을때는 아버지와 어느정도의 의사 소통이 가능했는데, 짧은 시간 사이에 아버지와 더이상 의사 소통이 안되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그때는 같은 질문을 계속 반복해서 하시기는 했어도 내가 대답을 하면 "응 그려" 하시며 순간이나마 내 말을 알아 들으셨었다. 그런데 이제는 내 대답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당신 머릿속에 있는 말만 계속 하실 뿐이었다. "나랑 씀백산으로 냅다 내빼자(나와 승백산으로 도망가자)" 하는 말만 계속 하셨다. 나는 "잘못한것도 없는데 왜 도망가요?" 하고 반문하면 아버지는 "나랑 씀백산으로 냅다 내빼자"를 반복하실 뿐이었다. 씀백산은 옛날 시골집에서 가깝게 위치한 산이다.
아버지가 왜 그런 말을 하실까 생각해 보니, 지금 아버지의 기억이 한국전쟁 당시에 머물러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 당시 아버지는 부모님을 모시고 농사를 짓는 열 여덟살의 청소년 이었는데,징집 명령이 떨어지니까 아버지는 겁이나서 도망을 다니셨다고 한다. 도망이라고 해봐야 멀리 타지로 간게 아니었고, 농사를 짓다가 경찰서에서 징집 인원들을 잡으러 오면 다락에 숨거나 승백산에서 몇일 숨었다가 내려 오시는 정도 였다고 한다. 영화에서의 주인공은 나라가 위기에 처하면 학도병으로 자원 입대하여 용감하게 싸우는데, 나의 아버지는 그저 죽는게 두려운 순박한 시골 아이였을뿐 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치매의 질병이 아버지를 열여덟 시절로 끌고 가서, 아버지를 불안에 떨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는 나에게 같이 '내빼자'고 하면서 본인은 기력이 없어 몸을 움직일수 없으니까 이불을 끌어올려 얼굴과 머리를 덮으시며 자신을 숨기셨다. 나는 "아버지 이제 도망 안가도 되. 아버지 잘못한것 없어" 하고 말하면 아버지는 이불을 내려 빼꼼히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는 또 생각이 나셨는지 이불을 끌어올려 이불속으로 머리를 숨기기를 반복하셨다. 타조는 두려우면 모래에 자신의 머리를 묻고 자기가 숨었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그것처럼 아버지는 여든 일곱 연세에 아기의 정신 수준으로 열 여덟에 겪었던 그 두려움으로부터 도망치려 하시는 것이다.
결과론이지만, 어쩌면 겁장이 아버지의 덕분에 내가 존재할수 있었고 나의 자식들이 존재하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시절 아버지의 상황이었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애국심에 불타 내 한목숨 기꺼이 조국에 내놓았을까? 대답할 자신이 없다. 그렇다면 누가 우리 아버지를 손가락질 할수 있을까? 결혼해서 자식들 있다고 징집 대상이 아니었던 사람들, 아니면 자기 살려고 국민들 내버려 둔채 한강다리 폭파한 정치 지도자들? 열여덟의 아버지도 부양 해야 할 부모님.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셨다. 엄연히 법이 있기에 징집을 피해 도망간건 마땅히 처벌을 받아야 마땅하지만(휴전후 부역을 하셨다), 나는 그것이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을 만한 범죄는 아니라고 믿고 아버지가 부끄럽지도 않다.
아버지가 잠깐이라도 정신이 돌아오시면, '아버지가 잘못한 것 없으니까, 더 이상 숨지 말아요' 하고 안심시켜 드리고 싶다. 돌아가실 때까지 두려움으로 이불을 덮고 숨어 사시게 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 그래도 아버지가 계속 이불속에 숨으시면 나는 어쩔수 없이 아버지와 까꿍 놀이를 계속해야 할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