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 한살의 자화상

쉰 한살의 자화상

by 황가네 막내 (Posts: 0) » about 5 years ago

사춘기때 한다는 '왜 사는가?' 하는 인생의 질문을 요즘에야 심각하게 고민하게 됐다. 어차피 이 질문에 정답은 없다. 각자 고민하고 각자에 맞는 답을 찾아야 한다.  이런 비슷한 고민을 철없던 시절에도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던 시절에도 순간 순간 했었겠지만, 이제 쉰을 지나니까 '왜 살고,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고민이 좀 더 구체적이고 무겁게 나에게 다가 온다.  특히 26년을 같이 살아, 나의 민낯을 가장 잘 아는 아내가 큰애의 결혼이 다가 오니까 새식구 앞에서 품위없게 행동하지나 않을까 나의 언행에 지적질(?)을 해대는 통에 어쩔수없이 나를 행동들을 돌아보게 되고 삶의 방식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고민하게 된것 같다. 
 
아내가 나한테 하는 지적질 중 가장 쓰라린 것은 내가 '남을 배려할줄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정죄할 때이다. 젊었을 때는 그럼 나의 행동들이 '자기 밥그릇은 챙긴다' 또는 이기심을 '자기애' 정도로 포장하려 했겠지만, 지금 나이에는 여간 수치스럽고 모욕적인 지적질이 아닐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갖고 있는 이기심을 가족. 친구. 사랑하는 이성을 통해서 남을 배려하는 법을 배우고 이기심을 조금씩 내려 놓으면서 성숙한 인격체로 발전해 가는데, 며느리를 보고 손자를 볼 나이에 아내한데 그런 지적질을 당하면 당연히 기분은 꽝이다. 예전 같으면 아내의 지적질에 발끈 했었겠지만, 이제는 나도 나이를 먹었는지 자연스레 내 시선이 아닌 상대방의 시선으로 나의 언행을 돌아보게 된다.  
 
아내에게 지적질 당하는 나의 언행들은 나의 관점으로는 충분히 해명될수 있다. 그런데 타인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 즉 나란 사람에게 '성숙한 인격체'를 기대하고 바라보는 타인들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나는 아무런 변명도 늘어 놓을 수가 없게 된다. 그리고 타인의 시선에서 내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하면, 나는 가슴이 턱 막히고 머리속이 하애진다. 
 
- 나는 부모님에게 착하고 자랑스러운 막내 아들인가? 
 
- 나는 누나들과 형에게 착한 막내 동생인가? 
 
- 나는 아내가 믿고 의지할수 있는 그녀의 인생에 동반자이자 좋은 남편인가? 
 
- 나는 두 아들들이 존경하는 좋은 아버지 인가? 
 
- 나는 직원들에게 어떤 인생 선배이고 맨토인가? 
 
- 나는 클라이언트들의 일을 최선을 다해서 하고 있는가?  
 
- 나는 친구들이 믿을수 있는 의리있는 친구인가? 
 
- 나는 인생의 후배들과 선배들에게 어떤 존재인가? 
 
여기까지 질문을 던지면 구지 기억을 더듬으려 하지 않아도 되돌리고 싶은 지난 기억들이 나의 머릿속에 파노라마처럼 떠오른다. 사춘기때 독이 올라 엄마에게 내 뱉었던 반항의 말들, 누나들에겐 상처로 남았을 조심성 없었던 말들, 아들들을 꾸짖으며 스스로의 화를 못이겨 쏟아 부었던 거친 말들, 후배들에게 퍼부었던 날카로운 지적질들, 돈주는 클라이언트들에게 카운셀링은 하지 않고 잘난척하며 가르키려 했던 나의 행동들, 친구들의 말에 경청하지는 않고, 원하지도 않는데 조언이랍시고 늘어놓은 말들...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그들에게 나는 과연 어떤 아들이며, 동생이며, 남편이며, 아버지이며, 선배이며 친구이며 후배일까? 
 
돌이켜 보면 나의 후회되는 사건들 중에는 행동보다 세치 혀로 뱉은 말들이 훨씬 더 많다. 그런 나를 지켜보다 아내는 종종 '오빠는 말만 안하면 중간은 갈텐데' 하면서 핀잔을 주곤 한다. 때론 이치에 맞는 말을 해도 유시민씨처럼 싸가지 없게 하면(유시민씨 본인의 말을 인용) 그런 말을 듣기도 한다. 오늘 아침에는 아내가 내 배를 보고 필스베리 도보이(Pillsbury Doughboy) 같다고 놀려서 '네 옆구리가 필스베리 도보이 같아' 하고 받아쳐서 아내를 삐지게 만들었다. 그냥 미소로써 대응해 주면 웃고 지나갈 일이었다. 그런데 친절하게 부위까지 꼭 찝어 말해주니까, 가뜩이나 몸이 불어 자존감이 낮아진 상태의 아내는 내가 얄밉고 꼴보기 싫었을 것이다. 재미있자고 장난 삼아 한 얘기가 내 의도와는 다르게 아내에겐 상처가 되고, 나에게 이 사건은 또 되돌리고 싶은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왜 사는지, 어떻게 살 것인지를 고민하며 사는 것도 중요한 인생의 과제이다. 같은 맥락에서 무엇을 하지 말고 살아야 하는지도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것 같다. 주위 사람들을 배려하며 산다는 것은 자신의 욕심과 이기심을 내려 놓고 그들의 마음을 먼저 헤아린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려면 그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줄수 있는 말과 행동을 자재하여야 한다. 아홉번 좋은 말하고 한번 실언하여 상대방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다면, 아예 한마디도 안하는게 더 낫다.  내가 막내로 태에나 많은 내릿 사랑을 받고 자란 탓인지 아니면 원래부터 그런 성격을 가지고 태어난 것인지, 내가 생각해도 나는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남들에 비해 적고 또 익숙치도 않다. 그렇다고 남은 인생을 이렇게  살던대로 쭉 살수는 없는 일이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남을 배려하지 않는 늙은 나의 모습은 세상의 눈엔 점점 더 추하게 비춰질 것이기 때문이다. 
 
쉰살이 지나니까 눈도 침침해지고 귀도 많이 나빠졌다. 이제는 그동안 수고한 입도 좀 쉬게 해줘야겠다. 인격적인 수양을 닦아 세상에서 존경 받는 성숙한 인격체 까지는 가지 못한다 할지라도, 아내의 조언대로 말이라도 아끼고 줄여서 실언을 하지 않아 최소한 중간이라도 가봐야 겠다. 그동안 나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꾿꾿하게 애정어린 비난질을 해준 아내가 새삼 고맙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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